구원의 기초가 희미해지는 교회(마태복음20:28)
‘당신은 신앙의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정답이긴 하지만 상황은 복잡합니다. 수많은 이단들도 동일한 대답을 하며 교회생활을 하지 않는, 이름뿐인 기독교인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심도있는 믿음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께 뿌리를 둔 신앙은 무엇인지 기록된 말씀을 따라 정확히 아는 것이 절박합니다.
오늘날처럼 자체 생명력은 쇠퇴해 가고 이단은 득세해 가는 교회의 현실을 치유하여 다시 부흥의 불꽃을 피울 수 있는 토대, 곧 구원의 능력을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복음·은혜·구원·영생·심판·그리스도·성령…. 수많은 성경의 핵심단어는 모두 ‘죄’라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달리 말하면 ‘누가, 어떻게 죄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성경의 핵심 주제입니다. 행복·성공·번영…. 뿐만 아니라 죄와 그 결과인 사망으로부터 어떻게 자유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복음의 주제를 번영과 같은 단어와 결부시킨 것은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 파악의 실패입니다. 되돌아보면 교회사에 나타난 부흥 가운데 죄와 멀어지고 거룩을 향해 가까이 가는 운동이 아닌 경우가 있었습니까. 인간의 죄를 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부어지지 않고 인간의 각성만으로 진행된 부흥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 죄와 관련된 심각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몇 가지 대표적 예를 들어봅시다. 아담이 범한 한 가지 불순종은 전 인류를 하나님과 분리시켰습니다. 노아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전 인류는 모두 멸망했습니다. 롯의 경고를 무시한 아내는 소금기둥이 됐습니다.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는 멸망을 피했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은 헤롯은 충이 먹어 죽었습니다. 재산의 반을 헌금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말로 즉사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로 말미암은 두려운 결과는 마귀나 악한 영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빛바랜 그림처럼 간과하는 태도를 흔히 목격합니다. 이는 술친구와 먹고 마시다가 갑자기 돌아온 주인으로부터 슬피 울고 이를 갈게 되는 처벌을 받게 되는 일과 같습니다. 세례(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자 자신을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죄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는 대속물이신 어린양이 우리 믿음의 기초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결과이며, 십자가는 죄를 싫어하시고 진노하신다는 하나님의 증거입니다.그리고 예수님은 대속물 되시는 자신의 고난 위에 구원의 방주이신 교회를 세우십니다. 이 토양을 먹고 자라는 교회에는 그리스도라는 자양분이 가득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결코 오늘날과 같은 교회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치르신 대속의 희생을 마시고 생명을 얻은 교회라면 지금처럼 타인의 죄를 두고 격렬하게 싸우고 분열하는 욕망의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영원한 대속물이 되신 예수님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해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자신이나 남의 죄로 인해 넘어지지 않는 승리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글쓴이 김준성(서울 카이스트교회 담임목사, 사랑샘공동체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