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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면서 사는 삶 덧글 0 | 조회 123 | 2019-08-11 00:00:00
관리자  

사랑샘 자립자 칼럼 - 항상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면서 사는 삶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중2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4형제에게 불운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계모의 박해로 나는 가출을 했고,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목공소에서 기술을 배웠다.

친척이라고는 외가댁 뿐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이북에서 월남한 분이라 그렇다. 외할머니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거두어 주셨고, 외삼촌 역시 우리 형제들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러나 연로하신 외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시고나서 우리 형제들은 무척 슬피울고 서로 부둥켜 안고 서로를 위로했다. 미래를 기약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열심히 기술을 배워나갔다.

29세 때 영원한 동반자 아내와 만나게 되어 동거를 시작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내 아내는 정말 누구못지 않은 억척이고 또순이였다. 나는 생각없이 사는데 내 아내만은 미래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나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그런 여자였다. 한마디로 나는 초등생이고 내 아내는 어느 대학의 교수보다 더 존경스럽고 우러러 보였다.

또 두 아들의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에 전념하여 큰 아들은 창원의 LG, 작은 아들은 충남 아산의 삼성에 취직이 되어 우리 부부의 기쁨은 말로 못할 정도였다. 물론 그 무렵에 번듯한 우리 집도 장만하고나니 온 세상이 내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무슨 불행인지 이 행복도 오래 가지 못하였다.

큰 아들은 직장 상사와의 불황와 친구의 꾐에 의하여 사업을 한답시고 집을 담보하고 우리 부부 명의로 온갖 카드 대출로 끌어 쓰다가 빚 때문에 집 날리고 자기 동생까지 곤란하게 만들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없듯이 속 마음은 안타깝고 괴로웠지만 아들에게 실패했다고 실망 말고, 아직 젊다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하여 한마디로 사채 빚까지 지게 되었고, 빚장이들 등살에 당하는 우리 부부의 과로움은 극에 달했고, 채권자들의 괴롭힘에 마지막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내 명이 긴것인지 하나님의 도우심인지 모르나 눈을 떠보니 병원이고 내 몸은 고통스러웠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돌보아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더 살아서 그리스도를 믿고 기도하면 예전의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려 주리라 하시는 주님의 은총이라고 생각이 든다.

병원 생활 1달 후 퇴원하여 갈곳 잃은 채 방황하다가 옛날부터 교류하던 고운건축인테리어산업의 이진서 사장을 만나 사정을 예기하니 사랑샘교회 강성기 목사님께 인도해 주셨다. 숙식을 해결하니 마음이 놓였다.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25일만에 사랑샘교회를 튀쳐나왔다. 무슨 규칙 같은 것이 많은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후회되고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막상 나와서는 갈데도 없고, 한 친구집에 며칠, 그리고 다른 친구집에 며칠을 지내면서 이것은 사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또 죽음을 생각했다. 내 아내는 그래도 좋은 친구가 있어서 당분간 생활하게 되어 안심은 되고, 내 아들은 다 쓰러져가는 사업처에 그래도 살아있고, 내 동생들은 통영과 부산에서 밥은 굶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은 덜 괴로웠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대해주신 고운건축인테리어산업 이진서 사장님을 보고 죽자하는 마음에 찾아갔더니 내 몰골을 보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모습이 초라했고, 병색이 짙은 얼굴을 보고 안되었는지 그러지 말고 사랑샘교회에 다시 입소하여 생활하라는 권유에 강성기 목사님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운 생각에 주저없이 그냥 튀쳐나왔다. 바보같은 짓이었다.

그 바람에 이리저리 돈도 없이 돌아다니고 며칠 밥도 굶고 하니 괴로움이 쌓여 미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서 함안 칠원의 그랜드 슈퍼에 들어가 사정을 말하니 밥과 먹을 것, 그리고 여러 가지를 주시면서 다음에 갚아달라고 하셨다. 정말 너무 고마웠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또 4월 초팔일날 절에 가서 정말 며칠만에 먹는 밥인지라 비빔밥 두 그릇을 연거푸 먹었다. 그리고 거기서 소화되기를 기다렸다가 또 한 그릇을 먹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의 용기로는 남의 담은 넘지 못했다. 그러기를 며칠 지내는 중에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서 5만원을 주길래 체면 불구하고 받아서 그것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나의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동네 아는 분들의 체면때문에 도움을 요청도 하지 못하고 아예 연락할 길도 끊은 채 지내다 보니 굶는 것은 거의 일상화되었다. 승합차 안에서 자고하다보니 씻지도 못하고 그에 비례 해 내 몰골은 더 야위어 가고 비참해 갔다. 번개탄을 1개 구입해서 몇 번이고 시도를 해 보고 했는데 참 그것이 나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고운건축인테리어산업에 찾아갔다. 이진서 사장을 찾아가 사정을 하니 강성기 목사님을 사무실로 호출하셨다.

강성기 목사님께서는 나를 기꺼이 받아주시면서, “당신은 택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당신의 과거는 어찌되었든 여기 규칙대로 하면 얼마든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모두 다 주님의 은혜로 당신을 사랑샘교회에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베풀고 은혜를 주는 것이 아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의지대로 당신을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라고 하시길래 순간 뭉클함과 감동으로 더욱 더 목사님을 우러러 보았다.

다시 공동체생활관인 사랑의 샘터에 입소하여 생활하다보니 덕분에 몸과 마음이 많이 회복되어 예전의 내 몸 상태로 돌아온 것 같다. 그런데 몇 십년 몸에 벤 흡연 욕구 때문에 규칙을 위반해 목사님께 죄스러운 마음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지난 날의 나의 아집, 그리고 못된 생각과 성격을 고치고 오직 주님이 명령하시는 뜻대로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고운건축인테리어산업 이진서 사장님, 사랑샘교회 강성기 목사님, 아니 주님의 은혜라 생각하고, 항상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면서 살아가겠다. 2019년 7월14일


글쓴이 / 김 0 0(사랑의 샘터 2019년 1월16일 입소, 적응불능 2월13일 퇴소 후 5월21일 재입소, 2019년 7월20일 자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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