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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4세의 일기로 천국으로 이사한 형제를 추모하면서 덧글 0 | 조회 64 | 2019-11-01 00:00:00
관리자  

만 54세의 일기로 천국으로 이사한 형제를 추모하면서


지난 10월3일 만 54세의 일기로 이 땅에서의 생애를 마감하고, 젊은 나이에 천국으로 이사한 형제를 생각만해도 안타까움이 큽니다.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서 여러 곳을 전전하며 성장하였고,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으나 알코올로 어려움을 겪고 합의 이혼을 했습니다. 그 후에 열심히 노력을 했으나 이삿짐센터 사업을 하면서 산재사고를 겪었습니다. 병원 퇴원 이후에 마음을 추스러지 못하고 술을 더 마시게 되어 2015년 6월, 창원 시내 모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우리 사랑샘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랑샘에 입소하고 난 후에도 오래 전 부인과 이혼을 하고, 어머니와 너무 오래동안 밀착되어 생활한 나머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 우리 공동체에 입소해서 공동체 생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입소는 하지 않고 집에서 출퇴근을 하도록 도왔으나 그것도 한계를 느껴서 할 수 없다고 하면서 퇴소했습니다. 퇴소 이후에도 사랑샘에 가끔씩 전화를 하고 방문을 반복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경남지역의 여러 기도원과 정신과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 그의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동안 사랑샘에서 큰 오빠와 어머니를 위해서 사랑으로 섬겨 주셔서 고맙다, 어머니는 뇌출혈이 발병하여 삼성창원병원에서 수술을 했고, 그 후에 약간의 치매증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함께 생활하는 작은 오빠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많다, 그동안 큰 오빠도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창원의 알코올병동이 있는 병원에 입원을 수차례 했고, 최근에는 고성의 알코올병동이 있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것과 담당의사를 통해서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가서 담당의사와 상담을 하고 그의 상태를 보니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별을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는 아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거리가 있더라도 아버지를 한번씩 만나보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참으로 어려운 걸음을 해서 아버지를 면회했습니다. 아들을 만나자 아버지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 후에 나도 가끔씩 병원에 가서 신앙도서를 전해 드리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갈 때마다 서울에 있는 아들과 통화를 하게 하자 점점 더 회복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10월 1일에 동생으로부터 오빠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좀 더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연락이 왔고, 병원으로 옮기던 중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은혜스럽게 진행된 장례 이후에 그동안 서로가 힘겨워하던 가족관계도 회복이 되고 소홀히 하던 신앙생활도 올바로 하는 것을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음은 고인이 된 조 0 0 형제가 사랑샘에 입소해서 기록한 히스토리입니다.


“저는 1965년 1월 23일 충북 괴산에서 목회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곳 고향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아버님은 전남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교회로 떠나셔서 그곳으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얼마지나지 않아 목포시 고하도로 다시 옮기시면서 다시 영암으로 전학하고, 목포시 달이도라는 섬으로 전학하고, 또 다시 고하도로 전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얼마되지 않아 서울 효창동 금양초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고아원에서 생활을 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생활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생활하다가 충북 청주로 내려가면서 그곳에서 초등학교로 전학하면서 졸업을 했습니다, 그후 중학교에 다니며 교회를 건축하여 헌당식까지 마쳤으나 건물이 그린벨트 땅으로 교회가 헐리자 어느 교인이 운영하던 부도난 공장, 전기 수도 보일러 시설이 안되는 공장에 살면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졸업 이후에 잠시 직장 생활을 하다가 1984년 6월 26일에 군입대하여 연대장 차를 운전하고 1986년 12월30일에 제대하였습니다. 제대 후 무역회사 7년 근무하면서 결혼하여 아들과 살면서 집주인이 덤프트럭을 하고 있어서 그 차를 주인과 맞교대하면서 이런 차를 한 대 사서 하면 되겠구나 싶어서 그 트럭을 시가 오천만원으로 구입하여 시작을 하였는데, 그 당시에 IMF가 터지면서 제 사업이 몰락했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합의이혼으로까지 가고 저는 갈곳이 없어서 친구에게 10만원을 빌려 아버지가 계신 하동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아버님이 병이 들어 계셨는데, 진주 경상대학병원에서는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돌아가실 때 돌아가시더라도 서울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더니 허락을 받아서 현대아산병원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5번의 수술을 받고 마지막 6번째 수술은 장장 22시간의 수술을 마치시고 아버님은 중환자실로 들어가신 후 2005년 1월13일에 운명하셔서 장소를 옮겨 충주 건국대 병원에서 경남노회장으로 장례를 치루고 화장하여 마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그후 저는 마산으로 내려와 산재사고로 목디스크 수술, 장애 5급진단이 나왔습니다. 그 후 퇴원하여 포장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다 사기를 당하여 쉬고 있습니다. 중간에 술로 인해 간경화까지 와서 5개월의 시한부 진단을 받고 7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2015년 8월28일에는 사랑샘교회 강성기 목사님, 사랑샘가족들과 함께 대구열방선교센터를 방문하여 정주안 선교사님을 만나고 선교유적지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오늘 제가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나는 정상적인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부족함없이 고등학교 졸업까지 하고 지금 나이 50이 넘은 나이까지 무엇을 하였을까 밤이 새도록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강성기 목사님의 지시에 따라 성공하는 그 날까지 할 수 있다, 해보자,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도전해 보리라.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또한 강성기 목사님 감사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은혜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죄인이 기도드립니다. 이제는 술 마귀에서 벗어나 거듭나고 깨우쳐 주셔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이 죄인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강성기 목사님과 사랑샘교회를 축복하시고 사랑샘교회가 은혜의 동산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015년 8월 30일 조 0 0 “


글쓴이 강성기 (사랑샘선교회 대표, 사랑샘공동체 대표, 사랑샘침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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